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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디 워터스는 블루스 음악을 이야기 할 때 절대 빠져서는 안되는 명인 중의 명인입니다...

40년대 어쿠스틱 델타 블루스 시대부터 60,70년대 이후의 일렉 블루스 시대까지 40여년을 활동하며 수많은 블루스, 블루스록 뮤지션에게 영향을 주었던 머디 워터스의 1977년작 [Hard Again ]의 수록곡들을 준비해 봤습니다...
이 음반은 텍사스 블루스 기타의 명인 자니 윈터가 참여한 머디 워터스 후기 명반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입니다...
올리는 곡들은 얼마전 구입한 보너스 트랙이 수록된 리마스터링 재발매 음반에서 컨버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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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Mannish Boy 
02   Bus Driver 
03   I Want To Be Loved 
04   Jealous Hearted Man 
05   I Can't Be Satisfied 
06   Blues Had A Baby And They Named it Rock & Roll (#2)
07   Deep Down In Florida 
08   Cross-Eyed Cat 
09   Little Girl 
10   Walking Through The Park - (previously unreleased, bonus tr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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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대 시카고 블루스 음악을 주도했던 무디 워터스(Muddy Waters)는 미시시피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이 맥킨리 모건필드(McKinley Morganfield)인 그는 머디 워터스란 예명을 어린 시절 낚시를 하며 놀던 머디 강에서 따왔다고 한다.
10대 시절부터 그는 미시시피 델타 클럽에서 밴드활동을 했는데 그의 보컬 스타일은 그 지역의 이름난 블루스 뮤지션인 선 하우스(Son House)에게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기타 연주의 기초는 숙달하고 있었으므로, 그는 연주 활동을 위해 각지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41년에는 실라스 그린 텐트 쇼(Silas Green Tent Show)에서 보컬과 하모니카 연주를 하기도 했으며 43년에는 시카고로 건너가 빅 빌 브룬지(Big Bill Broonzy)를 사귀면서 음악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듬해부터 그는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46년에 이르러서 그는 블루스 아티스트 서니랜드 슬림(Sunnyland Slim)의 도움으로 아리스토크래트(Aristocrat) 레이블과 계약을 맺고 몇 장의 싱글을 발표한다.
그러나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는 못했기에 그는 한동안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매일 밤 클럽 등지에서 연주를 하고 낮에는 트럭을 운전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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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대 후반에 발표한 그의 첫 싱글 'Roilln' Stone'의 히트에 이어 'I Feel Like Goin' Home', 'I Can't Be Satisfied'같은 곡들은 워터스에게 메이저 블루스 뮤지션의 입지를 확고하게 다져주었다.
이때 함께 했던 베이시스트 빅 크로포드(Big Crawford)의 연주는 후에 발표하는 [Rollin' And Tumblin'], [Rollin' Stone], [Walking Blues]를 포함한 여러 장의 앨범에 음악적 지향점을 밝혀주는 계기가 된다.
참고로 록밴드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이름은 바로 워터스의 노래 'Rollin' Stone'에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1951년에 그는 오티스 스팬(Otis spann 피아노), 지미 로저스(Jimmy Rogers 기타), 리틀 월터(Little Walter 하모니카), 엘진 에반스(Elgin Evans 드럼) 등과 밴드를 만든다.
이들은 'Honey Bee', 'She Moves Me', 'I'm Your Hoochie Coochie Man', 'I Just Wanna Make Love To You', 'I'm Ready', 'Got My Mojo Working', 'Mannish Boy' 등 블루스 고전들을 연달아 발표한다.
당시 워터스의 밴드에는 월터 호튼(walter Horton), 주니어 웰스(Junior Wells), 제임스 코튼(James Cotton), 버디 가이(Buddy Guy) 등 시카고 블루스계의 일급 뮤지션들이 수없이 거쳐갔다.

워터스는 50년대 최고의 전성기를 맞아 미시시피 델타, 뉴올리언즈, 그리고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했지만 그의 이름과 음악은 이미 전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었고 수많은 록그룹들에게도 영향을 주기 시작한다.
후에 그의 대표곡들이 많은 록밴드들에 의해 리메이크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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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년대에 워터스는 "뉴포트 재즈 페스티발(Newport Jazz Festival)"등 다양한 콘서트와 페스티벌에 참가하였고 60년대 말 이후부터 70년대 초반까지 록 뮤지션들과 함께 [London Muddy Waters Sessions], [Fathers And Sons] 등의 뛰어난 음반을 제작하는데 이 일련의 작품들은 마이크 블룸필드(Mike Bloomfield), 폴 버터필드(Paul Butterfield) 등을 포함한 많은 재즈/블루스 아티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71년에 그는 [They Call Me Muddy Waters]라는 걸출한 앨범으로 첫 번째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76년 밴드를 해체한 뒤 워터스는 얼마간 침체기를 겪지만 기타리스트 자니 윈터(Jonny Winter)와 함께 [Hard Again](77), [I'm Ready](78), [King Bee](81) 등 3장의 명반을 탄생시켰다.

시카고 블루스의 대부 무디 워터스는 83년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고인이 되었다. 그리고 87년 그의 이름은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영원히 새겨졌다.

changgo.com


Posted by rock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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